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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시 존스(Quincy Jones),
미국을 비롯해 서구권에서 그의 이름은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불립니다.
그가 90년의 긴 시간을 끝으로, 이제 영면에 들었습니다.
생전에 함께하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곁으로....
우리는 그를 잘 모르는 편입니다.
실제로 대중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객원 가수를 내세우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유명한 객원 가수 중 한 명이 바로 마이클 잭슨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퀸시(Quincy)는 그냥 Q로 통합니다.
마이클 잭슨이 팝의 황제.
마이클 조던이 에어 조던,
또는 이 두 사람을 지칭할 때 그냥 MJ
이처럼 그냥 "Q", 그 자체가 그를 지칭하는 표현이었습니다.
미국 대중 음악의 역사에서 아마도 프랭크 시나트라와 어깨를 견주며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죠.
1933년 3월 14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깊은 열정을 보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였고, 어머니는 음악가로 활동하였으며, 이러한 가정 환경은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과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그는 더욱 음악에 빠졌습니다.
퀸시 존스는 1940년대 후반,
15세 때부터 트럼펫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그는 재즈 음악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했지만, 학업보다는 음악 경력을 쌓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후 그는 1950년대 초반, 밴드 리더이자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게 됩니다.
특히, 그는 유명한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작업하며, 자신의 음악적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퀸시 존스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여러 재즈 앨범을 제작하며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재즈, R&B,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혼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1964년에 'The Birth of a Band'라는 앨범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대중 음악계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퀸시 존스, 마이클 잭슨을 키우다!
그가 없었으면 마이클 잭슨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순간 중 하나는 1982년에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으로 기록되었으며, 퀸시 존스는 프로듀서로서 이 앨범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Thriller'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며, 뮤직 비디오와 함께 대중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자켓 앨범입니다.
이때만 해도 마이클 잭슨이 참 엣띤 티가 나는 것을 보면 세월의 흐름은 어쩔수가 없나 봅니다.
벌써 42년 전의 일이니까요.
이때 폭발적인 인기를 함께 누렸던 마이클 잭슨의 곡들이 있죠.
특히, 'Billie Jean', 'Beat It', 'Thriller'와 같은 곡들은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진가가 발휘된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가 포함된
<유에스에이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 앨범도 그의 작품 입니다.
이 노래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퀸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 외에도 수많은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그들의 음악을 프로듀싱했습니다.
그는 맹인 가수로 유명했던 스티비 원더, 프린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과 작업하며, 각 아티스트의 독특한 스타일을 살린 곡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단순히 프로듀서에 그치지 않고, 작곡가, 편곡가, 트럼펫 연주자 등 다방면에서 발휘되었습니다.
또한 퀸시 존스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다고 합니다.
가장 알맞는 가수에게, 가장 완벽한 프로듀싱을 했다고 하죠.
그의 경력은 단순히 음악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퀸시 존스는 영화 음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The Color Purple'(1985)와 같은 영화의 음악을 작곡하며
아카데미 상과 그래미 상 등 여러 차례 수상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영화의 감정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퀸시 존스, 음악이 세상을 바꾸다!
그는 인권, 평화, 교육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영향력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1985년에는 'We Are the World'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아프리카 기근 구호를 위한 기금을 모으는 데 기여했습니다.
무려 40여 명의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이 하룻밤 사이에 녹음을 마친 것으로도 유명했죠.
그리고 불멸의 곡이 된 이 노래는 구호 활동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 곡은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적 업적은 수많은 상과 찬사를 통해 인정받았습니다.
퀸시 존스는 그래미 상을 28회 수상하며, 이는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음악가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무려 그래미 상에 80번이나 후보에 올랐던 그는 2013년에는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며,
그의 음악적 여정과 기여를 기념받았습니다.
그의 음악은 세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가 남긴 유산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그의 생애와 음악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문화와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퀸시 존스는 음악의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혼합하여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단지 음악계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퀸시 존스의 음악과 삶은 현대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퀸시 존스 (193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