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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은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를 언급하며
"그들(이스라엘)이 라파로 진격한다면 그들이 지금까지 라파와 다른 도시들을 다루는 데 써 왔던 무기들을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비비(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시 내각에 그들이 인구 밀집 지역으로 진입하면
우리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말했다"며
"우리는 무기 선적을 보류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단호했다. 하마스를 제압할 무기는 충분히 확보하고 있으며, 그럴 계획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는 미국에서 공부한 엘리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1946년 생이다.
1980년대 후반 이스라엘 정계에 들어오기 전까지 대부분 미국에서 활동하였다.
보스턴의 MIT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하버드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아이비리그 출신들의 코스라고 할 수 있는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근무했으며, 이는 미국에서 큰 인맥들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주 UN 대사를 지냈으며 국방장관, 외교장관 등을 거쳐 이스라엘의 최장수 총리이자 사실상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볼 수 있다.
전몰장병 추념일 행사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나는 적들과 최고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스라엘은 숨죽여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일어나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며
"하마스를 때리고 헤즈볼라를 붕괴시키며 안보를 확립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또한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스라엘의 생존을 보장하고 홀로코스트 기념일에 썼던
'두 번 다시는'(Never Again)이라는 명령을 기억할 것"이라며
"이는 나에게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실행 계획이다.
국방 당국과 군은 이 원칙에 따라 움직일 것"
이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가 있는 한, 하마스에 대한 공격은 계속
네타냐후는 2000년대 들어서 사실상 종신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다.
2021년까지 총리를 했었고, 이 당시 12년만에 총리에서 물러났으나 여전히 네타냐후는 새 내각이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며,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을 이겨낼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등 총리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네타냐후가 이끄는 우파 블록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1년여만에 복귀하였다.
결국 무지개 연정이 목표로 했던 네타냐후의 사법처리까지 버티지도 못하고
연정이 붕괴되면서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승리해 기회를 잡은 네타냐후가 복귀한 것이다.
네타냐후는 대 팔레스타인 정책의 핵심으로 초강경노선을 추구하며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규모로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등
대놓고 UN과 국제법에 반하는 정책을 꾸준히 펼쳐왔기 때문이다.